우주왕복선 문제 해결한 우주공학계 '수퍼맨'
입사 7년만에 수석 부사장 승진 화성 로봇탐사선 장치로 공로패 작은 금액도 원칙 벗어난 적 없어 국세청 조사관도 놀랄 정도 '클린' 도덕적 경영이 직원 충성심 유도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3분의2 여기 수퍼맨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입사 초년병 시절 누군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해 40여년 가까이 그를 수식하는 별명, 아니 수퍼맨 그 자체가 돼 버린 남자, 테이코엔지니어링(Tayco Engineering) 정재훈(67) 대표다. 세계 항공우주과학 분야에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 테이코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지만 여전히 과학자라는 직함이 더 잘 어울리는 이 노신사는 빨간 망토만 안 둘렀다 뿐이지 분명 수퍼맨을 닮았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왜 그가 이 평범치 않은 별명을 가지게 됐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기적의 사나이'라 불리는 정재훈 박사를 사이프리스에 위치한 테이코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책상 한켠 무심히 놓여있는 20년 된 아크릴 명패엔 CEO라는 타이틀 대신 'Superman'이라는 글자만이 또렷이 박혀 있었다. 실리콘밸리 젊은 창업자의 사무실에서나 볼 법한 이 명패는 이미 많은 것을 누설하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무척이나 비범한 이 수퍼맨에 대해. #수퍼맨, 세상을 날다 서울대 64학번인 그는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민과 동시에 캘스테이트 롱비치에서 기계공학으로 석사과정을 시작했고 1978년에 테이코에 말단 제도사로 입사했다. 당시 테이코는 전 직원 30여명 정도의 소규모 업체였지만 그에겐 미국에서 얻은 첫 직장이라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다. 그래서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남들이 한 장 제도할 때 열 장씩 제도 하는 탁월한 실력과 성실함으로 회사에서 금세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햄버거 한 개 달랑 사들고 학교로 가 연구에 매진했다. 그가 수퍼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다. 회사 동료가 그에게 수퍼맨이라는 작은 명패를 선물한 뒤부터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를 수퍼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내에서 수퍼맨으로 통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입사 1년차쯤 됐을 때 공군 전투기내 열처리장치 개발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사내 수석 엔지니어들도 난색을 표하던 프로젝트를 설계에서 실험까지 일사천리로 성공시켰던 것이다. 덕분에 테이코는 미 전 공군 전투기에 그 장비를 납품 할 수 있게 됐다. 그런 그의 놀라운 뚝심과 성실성으로 그는 입사 3년 만에 수석 엔지니어로 승진하게 된다. 그리고 입사 7년만인 1985년엔 수석 부사장으로 파격 승진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러클 맨, 기적을 쏘아 올리다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우주개발의 신기원을 연 두 우주왕복선 발사 성공 뒤엔 바로 그가 있었다. 1986년 전 세계인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발사된 챌린저호 폭발사고 실황중계를 지켜본 그는 그날로 연구에 착수, 미 항공우주국(NASA.이하 나사)에 보완책을 제시했다. 챌린저호 폭발사고는 우주산업 관계자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정 박사 팀 외에도 전 세계에서 40여개의 제안서가 나사로 쏟아져 들어왔다. 1년여의 검토와 실험 끝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그의 제안서가 통과됐고 한동안 중단됐던 미 우주프로그램도 재가동, 드디어 1988년 디스커버리호가 성공리에 발사됐다. 디스커버리 발사 성공 뒤 LA타임스 등 미 주류 언론이 앞 다퉈 그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그는 미 우주개발의 미래를 한 단계 앞당긴 '기적의 사나이'로 불리게 됐다. 그 뒤 2003년 컬럼비아호 폭파 역시 그의 손에서 문제가 해결됐다. 폭발 후 나사가 자체 개발한 보완책 2개가 모두 실패로 끝났는데 그가 우여곡절 끝 제출한 보완 시스템이 최종 실험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2005년 7월 그가 개발한 '결빙방지 가열시스템'을 장착한 디스커버리호가 성공적인 발사를 마치게 된다. 그 후 그는 2004년 화성에 착륙한 쌍둥이 로봇탐사선 내 열 조정장치들을 개발해 나사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현재 그는 나사가 2017년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화성탐사선 내 열 조정장치, 극저온 신경조직 등을 개발하고 있는 등 미국 우주개발 역사와 그 궤적을 함께하고 있다. #수퍼맨의 경영법, 타협 없이 깨끗하게 그는 저명한 항공우주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초고속승진을 거듭하던 그는 2000년 창업주에게 경영권을 인수, 입사 23년 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최근 미국 경제의 불황으로 많은 사업체들이 고전하고 있어 수성만 해도 다행이라는 요즘 테이코는 그가 대표로 취임한 이래 매년 10~20%의 매출 성장을 일궜다. 이런 보기 드문 성장세 뒤에는 그의 흔들림 없는 오랜 경영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부사장 시절, 경영권자의 작은 자금관리 허점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직언을 한 덕분에 국세청, 나사 등이 1년여에 걸쳐 실시한 공동 세무감사에서 '털어 먼지 안 나는 기업 없다'는 속설을 보기 좋게 뒤엎어 관계당국을 놀라게 한 테이코는 지금껏 투명한 기업경영으로 업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사업가라면 당연히 하는 그 흔한 골프도 치지 않는다. 그에겐 접대니 로비니 하는 단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골프 접대를 주고받을 시간에 그는 아내와 산책하는 것이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단다. 또 직원을 최우선으로 배려한 근무환경과 복지정책 덕분에 테이코에선 150여명 직원들 중 30년 근속 직원 수만도 30여명을 비롯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수가 100여명이 넘는다. 이직률이 높은 최첨단 사업체에서 이런 장기근속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껏 회사가 단 한차례의 구조조정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낙하산 인사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그의 경영철학 덕분에 자연스레 직원들의 직장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경영을 하고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론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깨끗하게 경영하면 언젠가 그 대가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제 오랜 경영철학이죠." 파란 바디수트에 붉은 망토 두르지 않았으면 어떤가. 지극히 과학적이되 휴머니즘을 잃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되 열린 사고를 지향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여전히 현장에서 고군분투 하는 한 그는 영원한 수퍼맨이다. 이주현 객원기자